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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기자들이여, ‘기사 쓰는 로봇’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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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장 작성일16-03-17 10:26 조회5,1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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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패배지, 인간의 패배는 아니다.”(이세돌 9단)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넘을까. 알파고와 이세돌의 격돌은 인간을 해묵은 질문 속에 가뒀다.
 
이미 수많은 알파고들이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이달 초 미국 프로골프 피닉스오픈에서는 로봇 엘드릭이 불과 다섯번의 티샷으로 홀인원을 잡아냈다. 아마추어 골퍼가 홀인원을 할 확률은 1만2천분의 1이다. ‘엘드릭’의 확률은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로봇라면전문점이 인기다. 달걀까지 얹은 라면 한 그룻이 1분30초 만에 완성된다. 유명요리사의 조리법을 따라하는 로봇쉐프. 식사를 주고 빨래감을 걷어가는 간병로봇. 외로움을 달래주는 애완견로봇. 재난현장에 투입되는 구조로봇. 하반신마비 환자가 걸어 다니도록 해주는 착용로봇이 낯설지 않다.
 
운전을 맡길 날도 머지않았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지난해부터 자율주행차량을 판매 중이다. 일부국가는 아예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무인자동차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알파고의 원리는 데이터가 입력되면 스스로 원리를 터득해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인 ‘머신러닝’이다. 인간에게 1천년이 걸리는 백만번의 대국을 단 4주만에 습득했다. 이를 통해 수싸움 예측능력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이 5판 중 1번을 이겼지만 두번 다시 인간이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예견이다. 이미 알파고는 이세돌의 게임하는 방법을 데이터화해 스스로를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똑똑한 로봇과 바보 인간 
 
지난 2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보고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일자리를 대신하면서 5년안에 5백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반복적인 일을 하는 스포츠 언론 사무 행정 제조건설업에서 사람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호주 필바라 광산에서는 무인트럭들이 흙과 자갈을 실어 나르고 있다. 굴착기에도 철광석을 운송하는 열차에도 사람은 없다. 프로그램운용자는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사무실에서 모든 작업을 원격 조정하고 있다.
 
주식시황을 분석해 투자수익을 높여주는 인공지능프로그램도 연구가 한창이다. 주식에 영향을 주는 각종 요소를 자동으로 분석해 해당 종목이 오를지 내릴지를 판단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로봇 기자도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다. 서울대연구팀이 최근 프로야구 결과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작성한 뒤 설문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사람이 쓴 기사와 로봇이 쓴 기사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 ‘굿킬’에는 드론에게 폭격임무를 내준 전투기조종사의 고뇌가 담겨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인병기를 조작하는 그에게 더 이상 ‘창공’은 없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만든 기계에게 일자리를 내주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대로라면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쉈던 19세기 산업혁명이 다시 재현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유토피아를 만들지 디스토피아를 만들지는 인간의 몫이다. 생산성과 자본집약에만 매달린다면 인간은 로봇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의식, 도덕과 예술, 종교·철학 등 인간의 가치에 무게를 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세기의 대국을 바라보면서 나라마다 반응이 달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웨덴 국민들은 우리처럼 걱정하지 않았다. 로봇 때문에 해고돼도 국가가 평생을 보장해주는 사회보장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은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데서 비롯된다. 어느 서울대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처럼 ‘로봇이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빨리 뛸 수는 있어도 넘어진 옆 레인의 친구를 일으켜주려고 입력된 값을 포기하고 달리기를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료의 시신을 가져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엄홍길의 휴먼원정대가 있는 한,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내 자식처럼 슬퍼하며 유가족과 함께 700여일을 거리에서 보낸 시민들이 있는 한 인간은 여전히 위대하다.
 
기자들이 어떤 기사를 써야 할지도 여기에 답이 있다. 눈물이 말라버린 기사, 남의 것을 베껴먹는 기사, 같은 내용을 어뷰징한 기사를 써댄다면 결국 로봇에게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울림이 있는 기사는 로봇을 이긴다. 결국 ‘사람 기자’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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