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산책] `코봇`과 로봇기술의 미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실장 작성일16-01-29 14:30 조회7,463회 댓글0건본문
|
기술은 그것의 사용 맥락 이면에 인간과의 관계를 은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을 그 사용뿐 아니라 관계라는 측면에서도 고려해야 한다. 관계의 측면에서 기술의 변화는 인간 삶의 변화와 동반된다. 기술박람회에 우리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박람회에서 우리는 전시된 기술 및 그 제품들을 목도할 뿐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달라질 우리의 현실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열린 기술박람회들의 경우, 그것들을 관통하고 있는 로봇 기술의 첨단성과 영향력에 기인하여 전시된 다른 기술들보다 더 주목된다.
로봇 기술들 중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코봇(collaborative robot)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로봇박람회(INNOROBO 2015)에서 전시된 코봇은 도구가 사용되는 맥락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코봇은 도구가 인간이 제어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 기초해 있는 로봇이다. 명칭 그대로 코봇은, 인간이 장악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돕는' 도구이다. 이러한 이유로 코봇에 대한 설명들에는 '조작' 대신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으며, 작업 과정에서 인간과 상관적으로 작동하기에 제3의 인력이라 지칭되기도 한다. 사실 도구가 인간의 통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뿐 아니라 도구와 인간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여러 철학자들이 이미 지적해 온 바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코봇은 인문학적 로봇 개념이 적용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자율주행차 역시 우리의 시선을 모으는 로봇 기술이다. 올해 1월 초 미국에서 열린 전자제품박람회(CES 2016)에서 전시된 자율주행차는 우리에겐 친숙한 기술로 느껴지기도 한다. 자율주행차는 어린이 만화 영화에서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단골 소재이자 주요 배역으로 출연해 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움직인다(自動)는 의미에서 자율주행차는 '자동차(auto)'라는 말의 본래 뜻을 잘 구현하고 있는 기술로 여겨진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자율주행차는 코봇과 묘하게 대비되고 조응된다. 코봇이 상호작용이라는 이념에 기초해 있다는 점과 자율주행차가 자율이라는 개념에 기초해 있다는 점은 이 둘이 마치 서로 다른 기술로 느껴지지만, 로봇이라는 관점에서 이 둘은 '자동화'라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조망되기 때문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定義)가 변경돼야 하는 자동화의 미래인 로봇 시대를 그려본 바 있다. 물론 앤드류와 같은 로봇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강화와 현실의 확장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구상하는 목적은 낙관이 아닌 희망을 찾는 것이기에, 그 전망은 부정적 가능성 역시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20년 전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을 통해 산업사회가 지속적으로 도입해 온 자동화가 인간의 노동을 지속적으로 대체해 왔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경향이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노동의 대체는 때로 '자유'라는 말로 포장되기도 했으나, 그 '자유'는 선택이 아닌 강요라는 점에서 실상 '소외'의 오기(誤記) 쯤으로 여겨진다.
물론 우리는 자동화가 가져온 문명의 혜택을 무시할 수 없다. 자동화기기를 사용함으로써 느껴는 편리함과 여유를 우리는 부정할 수 없으며, 지금껏 경험해 온 것 이상의 혜택을 우리는 로봇 혁명을 통해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율적으로 학습하고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는 로봇들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각종 편익은 아마도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사용의 맥락에만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그 사용의 이유를 망각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이유가 망각될 때, 그 사용의 맥락에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까지 함께 망각된다는 점이다.
동물과 대비된 인간의 삶을 우리는 문화라 부른다. 현실 속에서 인간의 삶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현실은 그저 물리적 공간이 아닌 문화적 장소다. 이렇게 현실의 특징을 규정하는 문화(culture)는 그 말이 땅을 일군다는 말에서 연원됐듯 여유로운 삶 속에서가 아니라 고된 노동 속에서 생겨나고 피어났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더 나아가 인간에게서 그 노동을 소외시키는 것은 현실 확장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축소를 결과할 공산이 크다. 그리하여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사용 속에서 그간 유예되었던 물음을 이제는 던져야 한다. 로봇은 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야 하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