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로봇 ‘휴보’ 세계를 제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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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장 작성일15-07-01 11:07 조회7,004회 댓글0건본문
‘지잉~, 지잉~.’ 영화 속에서나 듣던 요란한 모터소리가 관객석까지 들려왔다. 머리에 붙은 레이저 스캐너로 계단의 높이와 경사도를 가늠하던 로봇 ‘휴보(HUBO)’는 결심이나 한 듯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오르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Amazing(놀랍다)’이란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침내 계단 정상까지 올라서자 우뢰같은 박수와 환호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회 준비에 매진했던 연구팀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았다. 대한민국 로봇 ‘휴보’가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과학동아가 미국으로 날아갔다. 세계적 재난로봇 대회에 참가한 우리나라 로봇 연구진의 활약을 두 눈으로 지켜보기 위해서다.
대회는 6월 5~6일(현지시간) 이틀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모나시의 복합경기시설 ‘페어플렉스’에서 열렸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란 이름이 붙은 이 대회는 인류가 쌓아온 로봇기술의 극한을 볼 수 있는 자리다. 가상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에 로봇을 투입해 사람 대신 복구작업을 하고 빠져나오는 과정을 겨룬다.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다르파, DARPA)이 2012년 기획해 3년간 기술평가와 예선대회를 거쳐 마침내 최종 결승전이 열렸다.
● 세계적 연구팀 물리치고 44분 28초로 우승
대회 참가팀은 대부분 명함만으로도 주눅이 들 정도로 쟁쟁했다. 현대 과학기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세계적 로봇 기업 IHMC로보틱스, 일본 로봇연구의 대표주자 일본산업기술연구소(AIST), 무인기기 제어기술의 1인자라 불리는 미국 카네기멜론대(CMU) 연구팀,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로봇 연구팀 24개가 한 자리에 모였다.
우승 상금은 200만 달러(약 22억 원). 2위는 100만 달러, 3위는 50만 달러가 주어진다. 공학분야 경진대회 상금으로는 사상 최대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로봇 연구팀’이라는 명예와 자부심이 주어진다.
이런 세계적 대회에서 한국 로봇, ‘팀 카이스트(Team KAIST)’가 개발한 ‘휴보(HUBO)’가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첫 모델이 개발된 한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 휴보가 11년간의 성능 향상을 거쳐 세계 최고의 재난대응로봇으로 거듭난 것이다.
휴보는 6일 최종 결선 경기에서 8단계 수행임무(8점 만점)를 44분 28초 만에 완수해 1위를 거머쥐었다. 2위와 3위 팀 역시 만점을 받았지만 시간에서 승부가 갈렸다. 2위 팀 IHMC로보틱스의 로봇 ‘런닝맨(아틀라스)’은 휴보보다 6분 가량 뒤진 50분 26초 만에 임무를 마쳤고, 미국팀 ‘타르탄 레스큐(TARTAN RESCUE)’가 들고나온 로봇 ‘침프(CHIMP)’는 55분 15초가 걸렸다. 휴보와 10분 이상 차이가 벌어진 셈이다.
휴보는 대회 첫날인 5일, 8개 임무 중 한 개를 실패해 6위에 머물렀었다. 하지만 마지막 6일 시합에서 만점을 받으며 단숨에 1위로 점프해 역전 신화를 이뤘다. 첫날의 부진은 사소한 사고 때문이었다. 대회에는 로봇이 전동드릴을 손으로 들어 벽에 구멍을 내는 과제가 포함돼 있는데, 드릴의 톱날이 벽 모서리에 걸려 부러져 나가는 불운을 겪었다. 그래도 대회 하루 전인 4일 리허설에서 38분 만에 전 종목을 완주하는 등, 휴보는 대회 기간 내내 대체로 안정적이고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이 시합을 계기로 세계 각국의 로봇 연구팀들이 한국 연구진을 보는 눈빛은 즉각적으로 변했다. IHMC 로보틱스의 한 연구원은 직접 휴보팀을 찾아와 “우리 로봇은 너무 크고 무겁기만 한데 휴보는 크기도 적당하고 강력해서 좋다”면서 휴보와 기념사진을 찍고 갔다. 일본이나 미국 전문가들도 “이젠 한국도 강력한 경쟁상대”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 로봇기술 혁신 이뤄낸 대회
“지금 농담하는 것 아니야? 이게 된다고?” 2012년 DRC 공고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실제로 이랬다. 당시엔 ‘앞으로 100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악평까지 돌았다.
하지만 불과 3년 사이, 비록 제한적인 조건이지만 로봇이 사람 대신 일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대회를 “인간형 로봇기술의 혁신을 일으킬 계기”로 평가하는 이유다.
올해 열린 DRC의 임무는 모두 8개. 주최 측은 이 대회를 수행하기 위해 가상의 원전사고 현장을 건설했다. 같은 경기장 4개를 만들어 4대의 로봇이 동시에 시합을 치르는 식이다. 참가팀이 24개니 하루 6번 시합을 하면 모든 팀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임무는 먼저 차량에 태워 출발시킨 로봇이 △운전을 해서 사고 현장까지 들어가 정차를 해야 하고, 그 다음엔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내리는 △하차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이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차에서 혼자 내릴 수 있는 로봇은 없었다.
그 다음으로 △문 열기 과제를 수행해 가상의 오염된 실내로 들어간 다음, 냉각수를 조절하기 위해 △밸브를 잠가야 한다. 그 다음 주위에 놓아둔 전동공구를 들어 △벽에 구멍을 내고, 대회 당일 아침에 주어지는 △깜짝 과제(레버 당기기, 전선 연결하기, 벽 스위치 누르기 중 한 가지)를 수행한 후, △잔해물을 돌파해 건물을 빠져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4칸의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야 과제가 종료된다. 과제 하나를 완수할 때마다 1점씩 총 8점을 받는다.
대회에 참가하는 로봇은 이 모든 과정을 원격조종만으로 차례대로 진행해야 한다. 제한시간은 한 시간. 만약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켜 중간에 사람이 개입하면 10분의 패널티가 주어진다. 과제를 40분 만에 수행해도 50분으로 기록되는 것. 같은 점수라면 빨리 도착하는 팀이 이기는 조건이기 때문에 적잖은 부담이다.
다르파(DARPA)는 2013년 12월에도 미국 마이애미 인근 소도시 ‘홈스테드’에 있는 자동차 경기장에서 DRC 예선 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과학동아 2013년 12월 호, 2014년 1월호 기사 참고). 이 대회는 사실 본선대회를 위한 기술점검 성격이 강했다.
여러 과제를 순서대로 한 가지씩 수행해 점수를 받는 식이었다. 로봇이 쓰러질 것에 대비해 안전 줄을 설치하는 것도 허용됐다. 하지만 이번 본선 대회 때는 여러 가지 과제를 연달아 진행하고, 로봇 몸에 안전장치 등을 걸 수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보 연구진도 지난 3년 사이 로봇을 큰 폭으로 업그레이드 해왔다.
2013년엔 춤추고 물건을 집어 올릴 수 있는 ‘전신제어기능’을 덧붙인 ‘DRC 휴보’를 개발해 대회에 나갔지만 성적이 좋지 못하자 올해는 새로운 로봇 ‘DRC 휴보Ⅱ’를 개발했다. 기존 휴보와 비교해 힘과 체구, 안정성과 운동능력 등 모든 면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팀 카이스트를 우승으로 이끈 오준호 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장(기계공학과 교수)은 “후쿠시마 원전현장을 고려했기 때문에 이번 대회를 흔히 ‘재난로봇대회’라고 부르지만 두 발로 걷고 손으로 일을 하는 인간형 로봇 기술을 고난이도로 요구한 대회라 볼 수 있다”면서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휴보를 처음부터 다시 개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 인간형+특기 있어야 고성능 재난 로봇
로봇공학자들 사이에선 재난, 또는 구조용 로봇은 ‘인간형’이 될 거라는 예측이 많다. 우리 주변의 공간은 사람이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계단이나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문고리를 손으로 돌려 열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고, 의자에 앉아 생활을 한다.
이런 장소에서 로봇이 활약하려면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일을 해야만 가능하다. DRC가 로봇의 형태에 규제를 두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팀이 인간형 로봇을 들고 나온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거치며 인간형 구조의 단점도 드러났다.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가장 적합한 구조지만 철저한 제어기술이 없으면 오히려 불리해 지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회에서 막상 상위권에 속한 로봇을 보면 순수한 인간형은 오히려 찾기 어렵다. 2위인 IHMC로보틱스만이 예외적으로 높은 성적을 올렸지만 로봇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색깔이 있었다.
5위를 차지한 ‘팀 로보시미안’은 NASA 산하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개발한 로봇으로, 팔다리가 따로 없이 네 개의 전동식 다관절 로봇팔을 붙인 구조다. 임무 수행속도가 느린 점이 단점으로 지목됐지만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4위 팀 ‘님브로 레스큐’는 보행을 포기하고 다각도로 구부러지는 네 개의 바퀴를 달았다. 모든 임무를 빠른 시간 안에 완수했지만 마지막 미션인 계단오르기의 장벽에 막혀 7점에 그쳤다.
3위인 타르탄 레스큐의 로봇 ‘침프’는 두 팔을 달고 있지만 팔다리에 무한궤도(캐터필러)를 달아 탱크처럼 굴러서 이동한다. 넘어질 우려가 적고 튼튼하지만 굼뜨고 무거운 것이 단점이었다. 오준호 교수는 “이런 로봇들은 모두 휴보에 비해 훨씬 많은 연구비를 투입해 개발한 로봇으로, 용도에 따라 큰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1위를 차지한 팀 카이스트는 어땠을까. 휴보는 ‘변신기능(Transform)’을 개발했다. 휴보는 작업성을 높이기 위해 팔 길이를 조금 길게 만들었지만 기본 골격은 완벽한 인간형 로봇이다. 그러면서 무릎을 꿇고 앉으면 정강이와 발끝에 붙은 네 개의 바퀴로 굴러서 이동할 수 있다. 손으로 작업해야 할 때는 서서 두 발로 걷고, 먼 거리는 바퀴로 안정적으로 이동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휴보의 만능성은 대회 도중 적잖은 강점으로 작용했다. 다른 팀이 걷기나 바퀴, 무한궤도 중 한 가지만 선택한 것과 달리 휴보는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바퀴로 이동할 때는 전진과 후진이 모두 가능하고, 양 바퀴를 교차로 회전시켜 제자리에서 재빨리 회전할 수도 있다. 또 언제든 상체를 180˚ 돌려 앞뒤를 바꿀 수 있었다.
큰 힘이 필요한 계단 오르기, 험지보행 등에는 무릎 관절을 소나 말처럼 뒤로 꺾는 구조를 선택해 안정적으로 걷고, 두 손을 쓸 때는 사람처럼 앞으로 꺾는다. 한 미국 대학 연구팀원은 “휴보랑 똑같은 로봇을 주면 우리도 두 달 안에 만점을 받을 자신이 있다”면서 “재난구조 환경에서 이만큼 좋은 구조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봇의 성능에 만족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거듭한 것도 휴보 연구진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팀 카이스트는 새로 개발한 로봇의 성능을 실험하고 적합한 DRC 전략을 짜기 위해 한국에서 모든 미션을 100차례 이상 연습했다.
이것도 부족해 현지에서 환경이 달라질 것에 대비해 3주 이상 전지훈련을 거쳤다. 시합 현장에서도 최소한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미션을 수시로 시행했다. 연습장과 달라진 환경에 맞춰 적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안정성 역시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로봇이 연습 때는 미션을 잘 수행하다가 현장에선 고장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창업 벤처기업인 ‘레인보우’의 김인혁 기술이사는 “특수기능을 개발하는 것 만큼이나 로봇의 안정성을 끌어올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로봇 제어에 필요한 별도의 운영환경까지 자체 개발했기 때문에 안정성 면에선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했다.
다른 팀에선 로봇 오작동으로 패널티를 감수하고 시합장 안으로 사람이 투입되는 일이 속출했다. 하지만 팀 카이스트는 대회 첫째 날 톱날이 부러졌던 사고를 제외하면, 대회 기간 내내 한번도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시켰다.
● “재난로봇은 이제 시작… 상금 전액 연구비 쓰겠다”
‘휴보 아빠’ 오준호 교수는 이번 대회 우승에 대해 “기술적인 진보를 한층 더 크게 이룰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로봇기술이 실제 재난구조 상황에 투입될 만큼 완성됐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의 로봇은 수십 년 동안 대규모 연구비를 투입해 개발한 것으로, 이번에 1등을 했다고 우리가 가장 기술이 뛰어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생활에서 로봇이 재난, 구조활동에 참가하려면 더 큰 기술적 진보가 필요한 만큼 꾸준히 연구개발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는 벌써 다음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먼저 고민하고 있는 건 NASA에서 개최하는 ‘스페이스로봇챌린지(SRC)’ 다.
대회 다음날인 7일, 다르파는 대회 결과를 공유하는 워크숍을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 NASA측은 “화성 탐사 환경을 가정하고 DRC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임무로 구성된 새로운 로봇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휴보팀 관계자는 “아직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출전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일본에서 2020년 개최 예정인 ‘로봇월드컵’ 대회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SRC에 휴보가 출전한다면 세계적 재난 로봇으로 거듭난 로봇 휴보가 우주탐사에 쓰일 가능성도 열리는 셈이다.
오준호 교수는 “인간형 로봇 기술은 로봇 분야에선 기초기술에 해당한다”며 “이번에 받은 상금은 모두 새 로봇을 개발하는 연구비에 재투입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로봇기술 진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KAIST 연구진이 앞으로 더 큰 기술진보를 이루길 기대해 본다.
○ 이번 대회 우승 로봇 ‘DRC휴보Ⅱ’의 모든것
이번 대회에 우승한 로봇 ‘DRC휴보 Ⅱ’는 2013년 개발한 로봇 ‘DRC휴보’의 개량형이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체구를 한층 키웠다. 작업을 하려면 어느 정도 몸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 휴보의 키는 버전이 바뀌어도 줄곧 125cm 였다.
하지만 2013년 12월 미국 마이애미 인근 소도시 홈스테드에서 열렸던 DRC 1차 예선 대회 때 휴보의 키는 (머리 부분의 센서 등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140cm 정도다. 15cm 이상 커진 셈이다.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DRC 결선 대회에선 이 로봇을 다시 한 번 개조해 168cm, 무게 80kg 까지 키웠다(일부 언론에서 DRC휴보 II의 키를 180cm로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각종 보조장치를 고려한 것으로 설계상 실제 키는 168cm다).
휴보 개발팀이 이 이상 몸집을 키우지 않은 것은 균형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회에 출전한 로봇 중 휴보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2위 팀인 IHMC로보틱스의 ‘런닝맨(아틀라스의 개조형)’은 190cm에 175kg으로 80kg인 휴보보다 약 2배 가까이 무겁다.
3위 팀인 타르탄 레스큐의 로봇 ‘침프’의 키는 150cm 정도지만 무게는 200kg이 넘는다. 그만큼 크고 강력한 모터를 사용해 힘이 세지만 너무 크기가 커 오히려 행동이 굼뜨다는 지적도 나왔다. 휴보 연구팀은 하체 힘을 더 키우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
팀 카이스트의 김인혁 연구원은 “힘이 좋아야 걸을 때 안정성이 있다고 판단해 다리에 ‘슈퍼 커패시터(대용량 축전기)’를 부착했다”면서 “전기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내보내 강한 힘을 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모터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냉각장치도 대폭 개편했다. 처음 개발할 당시엔 물을 이용한 수냉식 냉각장치를 설치했다가 고효율 공기냉각장치로 변경했다. 정강이와 발 밑에 바퀴도 달았다. 두 발로 걷다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 자동차처럼 바퀴로 움직일 수 있도록 ‘변신 기능’을 넣었다. 시각처리 능력이 극도로 좋아진 것도 이번 모델의 자랑거리다. DRC휴보Ⅱ의 머리에는 레이저 스캐너와 광학카메라를 모두 달아 흐리거나 햇빛이 강한 날에도 문제없이 앞을 볼 수 있다.
여기에 권인소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팀이 개발한 시각처리 프로그램을 이식해 휴보가 카메라와 레이저로 주변을 촬영하면서도 데이터를 더욱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DRC휴보Ⅱ 가슴에는 두 대의 컴퓨터가 들어 있다. 한 대는 로봇 제어용, 한 대는 시각처리를 담당한다.
DRC휴보Ⅱ의 손도 주목해 볼 만하다. 11년간 가다듬어 모양과 실용성을 모두 갖췄다. 2004년 개발한 구형 휴보는 사람처럼 다섯 손가락이 움직이지만 손가락이 굵고 물건을 잡는 기능은 크게 떨어졌다. 내부에 고무로 만든 체인식 벨트가 들어 있어 강한 힘을 내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2009년 ‘휴보2’를 개발하면서 손가락에 와이어를 넣어 사람처럼 가느다란 다섯 손가락으로 물건을 강하게 감싸 쥘 수 있게 만들었다. DRC휴보로 넘어오면서 손가락을 세 개로 바꾸는 대신 약 15kg의 물건을 감싸 쥘 수 있게 했다. 물건을 쉽게 떨어뜨리지 않도록 손끝에 아주 작은 바늘을 붙였다.
○ DRC 출전한 한국 4개 팀 성적 살펴보니
- 로보티즈·서울대 예상 밖 부진, 국민대+美 UNLV 연합팀 총점 6점 고득점
DRC에 출전한 우리나라 팀은 4개다.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아 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의 ‘팀 카이스트(Team KAIST)’와 국내 로봇 기업 ‘팀 로보티즈(Team ROBOTIS)’,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박재흥 교수가 이끄는 ‘팀 SNU(Team SNU)’가 출전했다.
대부분은 우리나라 출전팀이 이 3개뿐인 걸로 알지만 실제로는 국민대 로봇제어연구실 조백규 교수팀도 DRC에 출전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폴 오 미국 라스베가스 네바다주립대(UNLV) 교수팀과 공동으로 ‘팀 DRC휴보(Team DRC HUBO @ UNLV)’란 이름으로 대회에 나갔다. 휴보팀으로부터 같은 ‘DRC휴보Ⅱ’ 한 대를 공급받아 시합에 참가한 것이다. 팀 DRC휴보는 총 6점의 점수를 받아 24개 팀 중 8위라는 비교적 높은 성적을 거뒀다.
반면 팀 로보티즈는 15위로 다소 부진한 성적을 냈다. 팀 SNU는 12위를 기록했다. 또 UCLA와 펜실베니아대가 공동출전한 ‘팀 토르(Team THOR)’는 13위에 올랐다.
해외 연구팀이 한국산 로봇이나 부품을 사용해 대회에 출전한 것도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19위를 기록한 독일의 ‘팀 헥터(Team Hector)’는 로보티즈로부터 ‘똘망(THORMANG)’ 한 대를 구입해 사용했다. 4위에 랭크된 ‘팀 님브로 레스큐(Team NimbRo Rescue)’도 로보티즈로부터 공급받은 부품을 이용해 독자적인 로봇 ‘모마로(Momaro)’를 개발해 7점의 높은 점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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