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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가져올 인류 문명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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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장 작성일15-07-20 15:47 조회6,9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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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활용에 따라 삶의 질 차별…19세기 기계파괴운동 재현되나

15년 전인 2000년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정보 격차라는 말이 큰 인기를 끌었다. 정보기술(IT) 혁명이 번질 당시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큰돈을 벌지만 디지털 문맹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활용 여부에 따라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진단이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PC·인터넷·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에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정보 격차를 거론하고 있지는 않다.

시대가 지나면서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했다. 바로 로보틱스 디바이드(robotics divide), 즉 로봇 격차다. 이제는 로봇 활용 여부에 따라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로봇이 일부 업종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걱정했는데, 단지 일부 일자리 소멸 외에 이젠 사회적 차원의 소득 불평등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미 큰 공장에서는 자동화가 많이 진전됐기 때문에 흔히 떠올리는 로봇의 모습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로봇이 공장 여기저기에서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제품 생산은 물론이고 제품을 이동시키는 물류 기능도 로봇이 담당하고 있다. 공장 전체 운영을 말끔하게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역시 로봇과 같다.


200년 전 영국서 벌어진 러다이트 운동
로봇 하면 생산에만 국한된 것처럼 생각되지만 알고 보면 서비스 분야에도 로봇의 침투 정도가 예사롭지 않다. 엑셀 스프레드시트의 보급으로 경리 담당자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고 앞으로 운전자가 없어도 운전이 가능한 무인 자동차가 크게 보급되면 초보 운전·졸음운전·음주운전처럼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인간의 실수 덕분에 돈을 벌었던 보험 업계나 자동차 부품 업계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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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소프트뱅크가 ‘페퍼(pepper)’라는 감정 인식 로봇을 200만 원대의 가격에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1000대만 한정 판매했는데 불과 1분 만에 매진됐다. 페퍼는 상대방 인간의 감정도 인식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인데, 친근하게 말동무를 해주는 저렴한 개인용 로봇이 크게 보급되면 반려동물에 대한 인기가 줄어들 것이다. 동물병원이나 반려견 의상·액세서리 업체의 매출에도 문제가 생긴다.

선진국에선 인구가 자꾸 줄고 3D 일을 사람들이 기피하고 있는데 이런 추세는 로봇의 입지를 더욱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를 돌보는 간병 로봇, 자폐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는 케어 로봇, 외로움을 달래 주는 힐링 로봇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그리고 재난 발생 시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는 구조 로봇, 통역을 대신해 주는 통역 로봇, 악조건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전투 로봇도 실전에 투입되고 있다. 이런 특화 서비스 로봇이 속출하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서비스 영역에서 인간이 설 자리는 자꾸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로봇을 부숴 버리는 사태가 200년 전의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 때처럼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

1811년 당시 영국은 유럽 패권을 놓고 나폴레옹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 내부에서는 공장주와 노동자 사이에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선언한 대륙 봉쇄령 조치로 영국이 유럽 대륙으로 수출을 할 수 없자 공장 가동률이 크게 줄어들었다. 더구나 대륙에서 농산물을 수입할 수 없자 농산물 가격이 폭등해 생활비가 올랐고 노동자의 생활이 크게 어려워졌다. 더구나 당시 면직이 인기를 끌어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실을 짜는 방적기, 직물을 짜는 방직기를 도입하는 공장이 늘어났다.

기계 사용이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노동자 고용은 제대로 늘어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노동자들은 노팅엄에서 공장에 있는 기계를 부수기 시작하는데 이런 기계 파괴 행위는 요크셔·랭커셔로 들불처럼 번졌다. 특히 자카르의 자동화된 방직기가 주요 파괴 대상이었다.

호스필이라는 한 고용주는 이러한 파괴 행위에 위협을 느끼고 기계를 부수는 직원들을 총으로 살해하기도 했는데, 그도 결국 앙갚음으로 살해당하고 말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영국 정부는 1812년 법령을 만들어 기계를 파괴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거나 유배했다. 기계파괴운동은 그 후에도 계속 발생했지만 1816년 들어 정부의 강경 조치로 더 이상 발생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기계파괴운동을 러다이트운동이라고 부른다. 1779년 네드 러드(Ned Ludd)라는 한 젊은이가 양말 짜는 기계 2대를 부순 적이 있었는데, 이 사실이 나중에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러드 장군, 러드 왕으로 회자되며 군중 사이에 퍼졌기 때문이다.


과다한 기계 사용이 소득 불평등 심화시켜
사실 이러한 기계파괴운동은 노동자들이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 발생하기도 했지만 대륙 봉쇄령 당시 공장의 열악한 상황과 폭등하는 생활비에 비해 터무니없게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도 이유였다. 따라서 러다이트운동의 원인을 오로지 기계에 대한 공포로만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다.

지금은 좀 조용해졌지만 지난해 토마 피케티 신드롬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피케티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 경제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자본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그토록 강조했던 보수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자신의 철학과 어울리지 않게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이 만약 망한다면 그 이유는 과도한 사회적 불평등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백인과 유색인 간, 남녀 간의 소득 불평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익률 차이, 부자와 빈자 간,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차이가 다 해당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득 불평등의 악화가 기계와 로봇의 사용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금을 더 효과적으로 운영해 노동자나 빈자에 비해 더욱 빠른 속도로 늘리기도 하지만 생산에 더욱 효과적인 기계와 로봇을 이용, 대량생산해 이윤을 많이 창출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다양한 로봇을 만들어 공장에서는 물론이고 사무실과 주택에서 로봇의 사용처를 넓혀 돈을 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로봇을 구매하기 힘들기 때문에 로봇을 활용해 개인의 생산성을 올리기 힘들다. 가족 중에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이 있어도 간병 로봇을 활용하지 못하면 자신이 일을 포기해야 하므로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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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선진국에서는 인구가 정체된 곳이 많다. 또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3D 직종을 잘 택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으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이민은 사회 갈등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인간을 귀찮게 하지 않는 로봇을 선호한다. 또 기계는 기업주를 곤경에 빠뜨리는 노사분규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효율적이고 스마트하게 운영할 수 있는 시설 투자를 지속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 발생한다.


인간의 창조성까지 대체하려는 로봇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인 윌리엄 제본스는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 개발되면 그에 따라 자원의 가격이 떨어져 수요가 증가해 오히려 그 자원을 더욱 많이 소비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즉 자원 소비를 줄이려는 기술 혁신 시도가 오히려 자원 소비를 늘린다는 것인데 이른바 제본스의 역설이다. 예를 들면 19세기 중엽 석탄이 부족해지면서 석탄 가격이 오르자 석탄 사용의 효율성을 높여 석탄 소비를 줄이기 위한 기술이 개발됐다. 이런 기술로 석탄 효율성이 증대되자 석탄 사용 비용이 줄어들어 오히려 석탄 사용량이 늘어났던 것이다. 제품에 대한 수요 탄력성이 높은 때에는 이런 제본스의 역설이 수시로 나타난다.

제본스의 역설이 로봇에도 나타날 수 있을까. 발생 소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로봇은 기계 성격도 지니면서 인간 성격도 동시에 지닌다. 다시 말해 물적 자본과 노동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현재 로봇이 비싸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가격대로 떨어지면 로봇에 대한 수요는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특히 놀라운 기술 혁신으로 로봇 가격이 인간의 노동임금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 로봇의 인기는 더욱 치솟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플라스틱 사용이나 화석연료 사용처럼 로봇의 사용은 이미 임계치를 벗어났다.

영화 ‘에이아이(A.I.)’에서 보듯이 후세 인간들은 로봇들을 파괴하는 축제를 통해 평소에 여러모로 로봇에 밀리며 꾹 참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고장 난 로봇을 수리하는 일을 하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지도 모른다. 그중 똑똑한 인간들은 돈 많은 소비자를 위해 보다 스마트한 로봇 개발에 더욱 매진할 텐데, 이는 상황을 역전시키기는커녕 가속화시키고 악화시킬 뿐이다. 제본스의 역설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이는 그래도 인간의 창의성이 로봇에 비해 뛰어나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에게 할 일이 많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 럿거스대의 컴퓨터 과학자 두 사람은 인간이 만든 역사적 예술 작품들의 창조성 순위를 매긴 바 있다. 이들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독창성과 영향력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입각해 작품의 창조성을 평가했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노란 정물’이 매우 창조적인 작품으로 뽑혔다. 이런 알고리즘이 더욱 진화되면 로봇은 우리 인간과 성과물을 줄줄이 세워 놓고 다른 분야의 인간 창조성마저도 거만하게 평가할 것이다.

소득 불평등 악화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자본가가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기계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기계가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는 로봇으로 변모하고 있다. 로봇으로 인해 급속하게 다가오는 로보틱스 디바이드 사회에서 우리가 버티려면 로봇 사업에 빨리 진출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하는 일에 로봇을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찾고 터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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